내가 겪었던 번아웃, 그리고 극복했던 경험

내가 겪었던 번아웃, 그리고 극복했던 경험


필자는 작년인 2018년, 번아웃(Burn-out)이라 불리는 탈진 증상을 한 차례 격하게 겪은 적이 있다. 번아웃은 2019년 5월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ICD-11에 정식으로 등록할 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증상 중 하나이다. WHO는 번아웃이 의학적인 질병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직업 관련 증상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 번아웃은 나 자신이 다 타버리고 더 태울 것이 없어 재만 남은 상태에 비유되고는 한다. 필자 또한 처음 번아웃을 경험했을때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사실 이런 경험은 필자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겪고 있는 경험이라 일상 속에서도 이제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을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

무엇보다 필자가 번아웃을 경험했을때 힘들었던 것은, 이 증상이 어느 날 갑자기 예고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개발하는 것을 즐기던 내가 하루 아침에 변해버리는 경험은 꽤나 당혹스러웠다.

물론 진짜로 하루 아침에 번아웃이 생길리는 없으니, 필자도 모르게 조금씩 쌓여왔던 요소들이 어떤 작은 사건 하나로 터져버린 것일테다. 평소에 이 정도는 직장인으로써 당연한거지, 회사에 개발 리소스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어, 주말에라도 공부를 안하면 도태될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매일 야근하고 자신을 채찍질했던 것들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한번에 큰 폭탄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필자가 번아웃을 경험하며 느꼈던 점과 어떻게 대처했었는지에 대한 회고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

필자는 번아웃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고 이야기 했다. 물론 조금씩 쌓여왔던 스트레스와 부담감들이 쌓여온 결과였겠지만, 필자는 그런 스트레스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처음 필자가 처음 개발에 재미를 붙히게 된 이유는, 그냥 뭔가를 만든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고 내 아이디어를 코딩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루비콘이라는 팀도 만들어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는 했었는데, 이 당시 팀원들과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매일 모여서 함께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개발자로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몇년 정도 이런 생활 패턴을 유지했었는데, 회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조금씩 생활 패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밤 11시까지 야근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지만 그래도 그냥 자기에는 오늘 하루가 아깝다는 생각에 매일 새벽 2~3시까지 코딩을 하고 주말에는 평일에 못한 만큼 더 많이 공부를 해둬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코딩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평소처럼 코딩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미없네…


결국 코딩이라는 것에 권태기가 온 셈이다. 처음에는 맨날 Vue만 하니까 권태기가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React Native를 사용하고 있는 모바일 챕터로 넘어가서 일을 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새로운 프레임워크와 개발 환경이 주는 즐거움은 처음 일주일 정도만 지속됐고 그 이후 해당 기술들이 익숙해지면 권태감이 느껴지는 것은 똑같았다.

분명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갑자기 재미없어지는 경험은 필자도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감도 못 잡았었다. 분명 필자는 내일도 일을 똑같이 해야하고, 필자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난감하기도 했다.

게다가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팀원들이 알게 되면 괜히 팀원들도 분위기에 흔들릴까봐 팀에는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만 꽁꽁 싸매고 있었다. 가끔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었는데,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은 직장인이 다 그런거지 뭐 또는 좀 쉬어라 였던 걸로 기억한다.

필자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주말에 아무리 푹 쉰다고 해도 평일이 되면 다시 권태감이 찾아왔다. 그래서 필자는 그냥 직장인이 다 그런거라고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 포기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잘못 생각했던 것은 여기서 번아웃 증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제대로 대처를 하지 않으니 권태감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필자는 개발팀 리더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필자의 감정은 매일 같은 업무에 지친 권태감과 이런 감정 상태로 일을 하면서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죄책감, 코딩이 싫어진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 꽤나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필자는 원래 성격도 급한 편인데다가 늘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쫓기듯이 살아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번아웃에 대한 결론도 생각보다 빨리 안 낫네? 그럼 팀원들한테 더 피해주느니 그냥 퇴사하는게 좋겠다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당시 팀 리더는 필자에게 번아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팀의 문제라고 말해주었고, 힘든 게 있으면 팀원들한테 언제든지 말하라는 말도 해주며 필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사실 이 한마디가 필자에게는 굉장히 컸던 것 같다. 당시 팀 리더가 필자에게 해줬던 이 한마디가 필자에게 약간이지만 여유를 가져다 줬었다.

이때부터 개발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해 다시 깨닿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개발자가 되기 전에는 없었던 경험

번아웃을 극복하고자 본격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 다음 가장 의아했던 것은 개발자가 되기 전에는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개발자가 되기 전에는 학생이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프로팀에서 활동하는 비보이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학생임과 동시에 직업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거의 10년 전 추억이 되버린 배틀


그리고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비보이들의 하루 연습량은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과는 비교할 데가 못된다.

필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평일에는 학교를 마치면 바로 연습실로 가서 밤 10시까지 매일 6시간 정도 연습을 했고, 주말이나 방학에는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 13시간 정도 연습을 했었다. 물론 공연이나 배틀이 잡히면 연습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밤새 새벽 연습을 하고 학교를 가는 경우도 있었다.

솔직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건 그때가 더 힘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필자는 비보잉을 할 때 번아웃을 겪어본 경험이 없었지만 개발을 할 때는 번아웃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직장 상사보다 더 직설적인 말로 갈구는 형들도 있었고, 심지어 연습을 제대로 안한다고 맞기도 했으며, 에어트랙이라는 기술을 연습할 때는 두 바퀴를 못해서 1년 동안 매일 5시간 넘게 이 기술만 연습했던 적도 있었다.



애증의 에어트랙, 결국 두 바퀴를 못 만들고 군대를 갔다


그래서 필자가 번아웃을 경험하면서 고민했던 것은 왜 그때는 안그랬고, 지금은 번아웃이 온 것인가?였다. 필자는 비보이로 활동할 당시에 매일 강도 높은 연습을 했고, 돈도 많이 못 벌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채찍

필자가 생각했을 때, 비보이였던 당시와 개발자인 현재 필자의 마음에 차이가 있다면 내가 좋아서 하는 것 자체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분명 비보잉을 할 때는 춤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배틀에서 우승하지 못해도 상관없었으며,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 마인드는 처음 춤을 시작했을 때도, 7년 동안 춤을 추고 난 다음에도 바뀌지 않았었다. 그리고 비록 군대갔다와서 생각이 바뀌긴 했지만 한창 프로 팀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돈도 딱히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개발자인 필자는 처음 개발을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여러가지를 신경쓰고 있었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실력을 가지고 싶다던가, 연봉이라던가,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욕구들이 건강하게 작용하면 발전의 원동력이 되겠지만 필자는 조금 과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생각 끝에 필자가 내린 결론은 내가 나를 너무 채찍질하고 있구나였다. 외부에서는 필자에게 어떤 압력도 주지 않았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들은 모두 필자가 만들어낸 채찍이었던 것이다.

회사 업무는 회사 업무일 뿐

필자가 개발 뿐만 아니라 다른 것을 공부할 때도 가장 좋아했던 것은 바로 모르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였다.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뭔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성취감이랄까, 내가 더 쓸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안도감이랄까, 그런 것들을 느끼기 위해 계속 새로운 지식을 찾아서 헤매였던 것 같다.

물론 신입 때는 회사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기 때문에 일만 해도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지만 점점 연차가 쌓일 수록 이런 느낌은 점점 무뎌졌고, 결국은 퇴근 후 따로 공부를 하면서 이 욕구를 충족시켜 나갔다. 그러나 퇴근 후에 매일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29살인 지금, 슬슬 이 짤이 공감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쌓여온 피로 누적인지, 운동 부족인지, 아니면 그냥 나이를 먹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언제부턴가 집에 가면 그냥 기절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회사 외적인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드니 최대한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야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과 내 실력이 느는 것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 무조건 내 실력도 함께 늘어야 한다는 그 생각 때문에, 연차가 쌓여가며 더 이상 회사에서 하는 일상적인 코딩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자 권태감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닿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회사는 내 전문 지식을 사용하기위해 나와 계약한 클라이언트 아닌가? 회사에서 뭔가 하나를 하더라도 반드시 배워가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때부터 마음 속으로 한가지 기준을 세웠다.

회사는 내가 갈고 닦은 지식을 써먹는 곳이지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학교가 아니다. 돈 받는 만큼 제대로 하자.

이 변화로 인해 필자는 돈 받는 만큼만 하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는데, 어찌 보면 계산적이고 차가운 마인드일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자신이 받는 연봉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마인드이기도 하다.

당연히 야근도 할 수 있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필자가 돈을 받음으로써 회사에 제공해야 하는 전문성의 일종이고, 자발적인 의사인 것이다. 난 직장인이니까라는 마인드때문에 하기 싫은데 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회사 업무를 할 때 이 업무는 나한테 별 도움이 안되는데라는 마음이 내가 가진 기술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보자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필자의 부담도 덜어냄과 동시에 한층 더 개발자로써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력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다

그리고 필자가 또 한가지 다짐했던 것은, 매일 코딩하지 않기 였다. 남들은 1일 1커밋하자고 하는 이 판국에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필자는 1일 1커밋이 아니라 1일 10커밋을 4년 넘게 해오다가 이 사단이 난 것이므로 어느 정도 코딩과 거리를 두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매일 코딩을 하는 습관은 대학생때부터 시작된 것인데, 처음에는 코딩이 너무 재밌고 좋아서 자연스럽게 매일 한 것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반 정도는 습관처럼, 반 정도는 공부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이어왔던 것 같다.

주변의 개발자들을 보면 워낙 뛰어나신 분들이 많기에, 그 모습에 더 압박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나 패러다임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게되면 결국 이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기술 포스팅도 읽어보고 새로운 기술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했었다.

사실 아무리 필자가 매일 공부를 하더라도 기술마다 러닝커브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기술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A라는 기술이 새로 나와서 그 기술을 공부하다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때 쯤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B라는 기술이 나오는 것이 IT업계의 현실이니 말이다. 결국 필자는 불가능한 목표에 압박을 느끼고 목을 메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필자는 다른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예전부터 워낙 이것저것 해왔다 보니까 WebGL이나 천체물리학, 사운드 엔지니어링 등 일반적인 웹 개발자들은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일종의 잡캐라고 할 수 있다)



열심히 홍보한 결과, 간혹 스타를 찍어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있다


물론 일반적인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는 딱히 쓸모없는 지식들이기는 하지만 간혹 이런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 사람을 구할 때 한번씩 기웃거려 볼 수라도 있기는 하다.(그리고 워낙 비주류 전문 지식이라 돈도 많이 준다)

필자는 이런 부분들이 다른 개발자들과 차별화되는 필자만의 무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은 처음 개발을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실력 향상 같은 것은 신경쓰지말고 그냥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자는 마음 말이다.

지금도 실력이라는 것은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누가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는 기준 자체도 굉장히 주관적이고 애매하기 때문에 그냥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연봉?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필자는 처음 개발자로 취업을 할 때 30살이 되면 연봉을 n원 정도는 받아야지하는 식의 일종의 기준이 있었다. 사실 30살이라는 나이는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10대 이후 처음으로 나이의 앞 자리가 바뀌는 만큼 뭔가 이루고 싶었던 것 같다.(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뭔 의미가 있나 싶긴하다)

그리고 필자는 내가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결과가 숫자로 나타나는 것이 연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연봉에 집착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필자가 노련한 협상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봉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협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협상이라는 것이 단순히 말을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지속적인 자기 어필과 홍보, 팀원들의 평가, 개발 실력 등 많은 요소들이 맞물렸을 때 비로소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연봉이라는 숫자가 완성되기까지는 변수가 너무 많다. 첫 직장이 어떤 곳이였는지, 그 곳에서 나의 실력을 어느 정도로 평가해주었는지, 게다가 어느 정도는 운빨도 따라줘야한다.

나를 제외한 회사 내의 모든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그만 둬서 내가 이 회사의 유일한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는 상황처럼 연봉 협상에 유리한 상황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사회 생활 경험이 많지도 않은 필자가 이런 것들을 알 리가 없었고, 당연히 필자가 세운 무리한 목표와는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인데 당시에는 목표에서 멀어진다는 불안감에 조바심을 냈었다.

사실 필자의 연봉은 그런 조바심을 가질 만큼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다. 뭐 돈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냥 29살 청년이 혼자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한 것이, 내가 먹고 살기에는 충분한 연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이 샘솟기 마련이다. 돈이 가진 마력이란 참 무섭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연봉이 진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필자가 이때 내린 결론은 얼마를 받든 어차피 부질없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무슨 스님이냐고 하는 친구들도 간혹 있는데, 이건 필자가 무슨 깨달음을 얻어서 내린 결론이 아니고 단지 계산기를 조금 두드려 보았을 뿐이다.

필자의 첫 취업 이후 수입과 매달 지출, 그리고 지금까지 필자의 평균 연봉 인상률까지 적용해서 10년 뒤를 생각해보면 음, 딱히 답이 없다. 40대 쯤 되었을 때 3억 모으면 잘 모은 느낌이랄까. 어떤 분은 3억이 어디냐고 하시겠지만 필자는 2억 모으나 3억 모으나 어차피 인생의 큰 틀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필자 같은 일반인은 로또라도 당첨되거나 주식이나 코인이 대박나지 않는 이상, 그냥 능력 껏 먹고살 만큼만 벌고 나머지는 결국 대출로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 사고 차 사고 하면서 남들처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금은 냉정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냥 필자가 계산기 두들겨 봤을 때 나오는 월급쟁이의 현실은 이 정도인 것 같다.



필자 같은 일반인은 어차피 저걸 잡아탈 용기도 운도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고 다니까 고작 연봉 몇 백만원 인상에 일희일비 하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필자는 연봉이 오르던 말던 딱히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물론 당연히 돈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오르면 좋기는 하지만 딱히 안 올라도 조바심 내지 않고 언젠가 오르겠지 뭐 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연봉 올라서 기쁜 기분이래봤자 어차피 몇 달 지나면 금방 또 그 액수에 익숙해져서 무뎌지기 마련이다.

근데 참 웃긴 것이 이렇게 마음 먹는다고 돈이 안 벌리는 것도 아니더라. 연차가 쌓이며 연봉도 오르기는 올랐고, 책도 하나 출판했고, 블로그에서도 수익이 조금씩 나고 있으니 오히려 예전보다 점점 더 잘 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딱히 돈에 집착하든 하지않든 그냥 자기 할 일만 잘하고 있으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기존에 필자 스스로 채찍질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면서 개발에 대한 중압감을 많이 덜게 되었던 것 같다.

코딩 외에 다른 취미를 가져보자

그리고 필자가 또 한가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였다. 개발자로 열심히 달려온 지난 4년 동안 필자는 취미나 문화 생활 같은 것은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코딩에 빠져있었다. 즉, 일상이나 취미 등 모든 것이 코딩과 귀결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번아웃이 온 이유에는 물론 중압감과 스트레스도 한 몫 단단히 했겠지만,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를 놓쳐서라고도 생각했다. 이건 사실 필자가 딱히 개발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하루하루 업무에 치여사는 직장인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번아웃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매일 코딩하지 않기를 실천하면서 남는 시간에 코딩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어떻게 보면 취미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건 아무래도 음악 정도인 것 같다.

사실 필자는 비보잉 외에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음악을 공부했었다. 슬프게도 천재들의 재능을 보고 쫄아서 포기하긴 했지만 나름 작곡 입시도 준비했었고, 연예 기획사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름 행복했던 프로페셔널 베짱이 시절


그러나 개발자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평일이고 주말이고 밤낮없이 매일 코딩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악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음악을 듣는 것은 매일 일상 속에서 하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곡을 분석하거나, 악기를 연습하거나, 화성학을 공부하거나 하는 일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서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가 번아웃을 극복하고자 마음먹고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집에 있는 피아노를 청소하는 것이였다. 그 이후로도 필자는 꾸준히 피아노나 기타도 치고 보컬 레슨도 받고 화성학도 공부하면서 취미로 음악을 하고 있다.(그 결과 회사에서 별명이 베짱이가 되었다)

음악은 나이 먹어도 즐길 수 있는 평생 취미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살면서 악기 하나 정도는 배워보는 것을 추천한다.

마치며

필자가 번아웃을 경험하기 전에 위에서 언급했던 것들을 실천하지 못했던 이유는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불안감, 그리고 실력으로 인정받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매일 코딩하고 공부하기도 하루는 짧으니까 취미 생활이나 여유는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채찍들은 결국 필자에게로 다시 돌아와 번아웃이라는 결과를 안겨주었다. 필자는 스스로를 채찍질함으로써 짧은 시간안에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결국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다.

지금의 필자는 트렌드에 별로 관심도 없고 그냥 필요하거나 궁금하면 그때 공부하자는 마인드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속도가 남들보다 확실히 느려졌기 때문이다. 요즘 겁나 핫한 쿠버네티스(Kubernetes)도 사람들 쓰기 시작한 지 한참 뒤에 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나름 행복하게 개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애초에 필자가 개발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재미있어서였기 때문에, 지금의 필자가 개발자로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재미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발의 가치는 뛰어난 멘토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좋은 회사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주위 환경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지금 필자는 한국과 외주 계약을 체결하고 체코 프라하에서 지내면서 나름 디지털 노마드 체험을 하고 있는 중인데, 한 달이라는 공백기와 백수에게는 꽤 부담되는 금전적 비용을 감수하고 이런 큰 결심을 내리게 된 것도 이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카페랑 코워킹 스페이스가 함께 운영되는 꿀 카페
프라하에서 디지털 노마딩 하실 분들께 추천한다.


솔직히 프라하로 오기 전에 이런 것들에 대한 걱정을 안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차피 백수된 마당에 눈치볼 것도 없으니 그냥 질러버렸다. 그리고 3주 정도 여기서 살아보니 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딱히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사실 필자가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 몇몇 분들이 면접 제의를 해주셨는데, 퇴사하고 2주 뒤에 바로 프라하로 출발해야해서 아쉽게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래서 필자는 솔직히 한달 동안 유럽에 있는 동안 이런 제안들이 흐지부지 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로 기대를 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 중 몇몇 분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고 있고, 한국에서 외주를 받아왔기 때문에 적당히 수입도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각보다 체코에서 체감하는 물가가 그리 비싸지도 않아서 지출이 별로 없다. 뭐 여행다니는 것도 아니고 기껏 해야 동네 산책이나 하는 정도라서 그런 걸 수도.

과거의 필자였다면 한달 동안 유럽행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한 달이라는 공백기동안 뒤쳐진다고 생각했을테니까.

번아웃을 겪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으면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 건강하게 개발자로써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코딩은 예전처럼 다시 즐거운 일이 되었으며, 나의 장점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예전보다 자신감도 생겼고, 지금처럼 외국에서 한달 동안 살아보는 재미난 경험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상으로 내가 겪었던 번아웃, 그리고 극복했던 경험 포스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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