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bout

무조건적 다양성 존중은 허상이다: 연기법(緣起法)으로 본 조직 운영의 지혜

성장을 거부하는 우수한 팀원,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적 다양성 존중은 허상이다: 연기법(緣起法)으로 본 조직 운영의 지혜

현대 조직에서 ‘다양성’은 거의 신성불가침의 가치로 여겨진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서로 다른 관점이 혁신을 이끌어낸다는 믿음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특히 IT 업계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이 조직 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현실에서 리더로 일하다 보면, 이런 이상적인 원칙들이 생각보다 복잡한 딜레마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연 모든 종류의 다양성을 무조건 존중해야 하는 것일까? 개인의 선택과 조직의 목표가 충돌할 때, 리더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100명 규모의 프론트엔드 조직에서 챕터 리드로 일을 하면서 마주한 구체적인 딜레마를 통해, 다양성 존중의 한계와 그 속에서 찾은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교 철학, 특히 연기법과 중도 사상이 어떻게 현대 조직 운영에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딜레마의 시작

리더로서 탁월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독려해야하지만 10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여있다 보니 구성원들 중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필자를 깊은 고민에 빠뜨린 팀원이 있었다. 그 분은 기술적으로 출중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 맡은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했으며, 동료들로부터도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볼 때는 리드를 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이러한 추가적인 역할은 거부했다.

필자가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제안하면 그 분은 담담하게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딱히 생각이 없어요.”

“다른 것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만약 그 분이 역량이 부족하면서 성장도 하지 않는다면 명확히 문제가 되겠지만,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더욱 애매했다.

이 경험은 필자에게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충분히 잘 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리고 “개인의 다양성과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하는가?”

독자 여러분도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딜레마 앞에서 우리는 흔히 두 가지 극단적인 선택지 사이에서 헤매게 된다. 하나는 “다양성을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는 통일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경험을 통해 필자는 이런 극단적 선택지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팀원의 상황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다양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보다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여기는 다양성 존중이라는 개념에는 어떤 함정이 숨어있을까?

다양성 존중의 함정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필자는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흔히 이분법적으로 접근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으로 단순히 나누려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원칙이 아니라 조직이나 사회의 특성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이 보여주는 진리와 맞닿아 있다. 모든 현상은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자유나 절대적인 통제 모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불교 얘기를 해서 당황스럽겠지만, 의외로 불교에서 말하는 에피소드들이 삶의 지혜를 많이 알려준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예로 들어보자.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헌법 제8조에서는 특정 조건에 따라 위헌 정당을 해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가 있을 경우, 자유를 무제한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가조차도 모든 다양성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조직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회사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업무 태도가 성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만을 주장하는 직원까지 포용해야 할까?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조직의 운영과 목표에 부합하지 않을 때는 결국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필자는 무조건적인 다양성 존중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다양성은 정말 무조건 나쁜 것일까?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다양성에는 분명히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다양성의 빛과 그림자

물론 다양성이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하다. 다양한 배경과 사고 방식을 가진 팀원들이 모였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더 많은 접근법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100명 규모의 프론트엔드 조직에서 일하면서 평소 굉장히 다양한 개발자들을 만나고, 개발자가 아닌 동료들과도 밀접한 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탁월한 역량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의견 차이가 커질수록 조율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이 과정에서 팀의 결속력이 약해지기도 한다. 이는 불교의 연기법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모든 현상이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한 요소의 변화가 전체 시스템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성의 이런 양면성을 이해하고 나니, 앞서 언급한 팀원에 대한 고민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무아(無我)와 성장의 변화 가능성

앞서 언급한 팀원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생각해보면서, 필자는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개인의 다양성이라는 것도 고정불변한 속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 팀원이 현재 성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필자는 리더로서 항상 팀원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목표를 제시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는 단순히 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프로페셔널로서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장은 강요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성장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그 선택의 최종 결정과 책임은 개인의 몫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필자는 이 순간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리더로서 어떻게 소통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칙도 필요했다.

팔정도(八正道)의 지혜: 올바른 소통

이때 필자에게 도움이 된 것은 불교의 팔정도(八正道) 사상이었다. 팔정도는 부처가 제시한 여덟 가지 올바른 수행 방법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중에서도 정어(正語)와 정업(正業)은 리더가 팀원과 소통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어(正語)는 “올바른 말”을 의미한다. 거짓말, 이간질, 욕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진실하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업(正業)은 “올바른 행동”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라는 가르침이다.

성장을 제안할 때는 비난이나 강요가 아닌 진실하고 건설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순히 더 나아져야 한다는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그 성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들을 실천하려고 하다 보면, 또 다른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리더 자신의 가치관과 팀원들의 다양한 생각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의 문제다.

자비(慈悲)와 방편(方便)의 리더십

이러한 고민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충돌과도 비슷하다. 진보와 보수, 각각의 이념적 차이는 고유한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조직 문화도 마찬가지다. 리더로서 필자가 가진 신념과 가치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면 조직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상대방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도록 돕는 것이다. 필자가 팀원들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도 이와 같은 자비심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방편(方便)의 지혜를 통해, 각 개인의 상황과 성향에 맞는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불교적 원칙들을 살펴보면서, 필자는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핵심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균형”이다.

중도(中道)의 균형

결국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조직의 목표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기준과 질서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필자가 팀을 운영하며 내린 한 가지 결론은 “모든 다양성이 무조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다양성을 제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직의 본질적인 목적과 일치하는 방향에서 다양성이 활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리더로서, 필자는 팀원들에게 다양성을 존중받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협업의 효율성을 위해 명확한 기준과 가이드를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리더는 팀원들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대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존재이기도 하며,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따라가도록 이끄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역할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지만,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중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부처가 극단적 쾌락주의와 극단적 고행주의 사이에서 중도를 찾았듯이, 리더는 무조건적 다양성 존중과 일방적 통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마치며

다양성은 조직의 성장과 혁신을 위한 필수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갈등과 비효율을 초래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팀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할지에 대해 꾸준히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얻은 통찰을 계속 나누고자 한다.

마치 부처가 가르친 것처럼, “마음을 따르지 말고 마음을 가르치라”는 지혜를 기억하며, 개인의 다양성과 조직의 목표 사이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계속해 나가고 싶다. 이것이 바로 현대 조직에서 필요한 불교적 리더십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으로 연기법으로 본 조직 운영의 지혜 포스팅을 마친다.

관련 포스팅 보러가기

Oct 30, 2023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 동기 부여의 심리학

에세이